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임수경 방북 사건 (문단 편집) == 입북 과정 == 대한민국에서 북한 지역으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길은 [[군사분계선|휴전선]]과 북방한계선을 제외하면 [[김포국제공항|서울]]-[[카이탁 국제공항|홍콩]]-[[베이징 수도 국제공항|북경]]-[[평양국제비행장|평양]]을 거쳐 가는 길이었다. 한중수교 이전에 가장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문익환]] 목사가 이 루트로 방북하는 바람에 이용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임수경]]은 크게 빙 돌아서 [[일본]]-[[서독]]-[[동독]]-[[소련]]을 통한 우회로를 선택했다. 6월 21일에 가족에게 "남해안에 놀러간다"고 말한 뒤 집을 나가 [[나리타 국제공항|도쿄]]로 출발해 [[일본]]에서 7일간 머무른 뒤 [[서베를린]]으로 갔으며 동베를린을 거쳐 [[모스크바]]로 간 다음 [[평양시|평양]]으로 출발해 9일 만인 6월 30일 오후 1시 30분에 [[평양시|평양]]에 도착했다. 이 날 임수경은 "돌아갈 때는 [[판문점]]을 통과하겠으며, 남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죽음을 각오한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순간 전 세계 언론사들의 텔렉스는 '[[전대협]]은 마침내 [[평양시|평양]]에 도착했습니다'라는 식으로 그녀의 평양 도착 및 성명서를 긴급 타전했다. [[임수경]]이 [[북한]]에 발을 들이기 전날 [[한양대학교]]에서는 경찰의 원천 봉쇄에도 불구하고 평양축전 전야제에 참가한 5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임수경이 [[전대협]] 대표로써 북으로 향한다는 속보를 듣고 환호성을 올렸다. 다음날 6월 30일 전대협 의장 [[임종석]]과 평축 준비위원장 전문환은 한양대 기자회견에서 임수경을 평축에 참가시키기 위해 [[평양]]으로 파견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은 전대협의 평양축전 대표 파견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진 불가피한 과정을 조국통일의 단심으로 이해해 주기 바라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불순한 마음도 없는 우리의 통일을 향한 평양행을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경찰은 평축 출정식이 막 진행되려는 찰나에 임종석 의장 체포를 위해 7천 5백여 명의 전의경 병력을 [[한양대학교|한양대]]로 투입해 학생 2천여 명을 강제 연행했다. 이때 [[홍성담]], 차일환 등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이하 민미련) 소속 민중 화가들이 제작한 연작 걸개 그림 <민족해방운동사>가 경찰에 의해 탈취되어 이리저리 찢겨 불태워지기도 했다. 한편 북한에서는 임수경 맞이를 준비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호텔에 1주일간 투숙시키면서 빵, 고기, 우유를 배터지게 먹여 급하게 살을 찌웠고 임수경용 박수, 김일성용 박수, 김정일용 박수도 다 따로 연습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